일본이 97년도에 시행한 위안부 피해자 보상 사업에 대해 알아보자.
일본은 이미 90년대에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배상을 하였다.
이른바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이라는 재단을 설립하여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실행하였다. 1997년도의 일이었다.
한국에서 실행된 배상 규모와 내용
일본의 사과금과 총리사죄편지는, 민간단체의 반대와 언론의 선동에 의해서 단 11명에게만 전달되었다.
후에 개돼중 정권이 민간단체의 모금과 국고보조금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하였으나
일본측 '기금'을 받아들인 11명은 제외되었다.
일본은 '기금'을 받은 피해자들도 한국정부의 지원금을 받게 해달라고 건의 하였으나,
개돼중 정권은 지급거부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기금을 수령한 할머니들을 향해 비난까지 가해졌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112061801261&code=115
언론과 민간단체 일각에서는 '기금'이 '법적책임'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청구권'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이 상호포기된 상태에서
국회 입법을 통한 배상은 조약에 위배되는 행위였다.
입법 배상을 위해서는 한일기본조약을 파기해야만했는데, 한국도 일본도 어느 쪽도
조약 파기를 원하는 쪽은 없었다.
역설적으로 '아시아국민기금'은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본조약'에 의해
'입법배상'이 봉쇄된 상태에서 일본측이 어떻게든 '책임'을 지기 위해 만든 재단법인이었던 것이다.
언론과 일부 단체에서는 기금의 성격과 내용에 대해 반일감정적인 비난을 일삼지만
당사자의 반응은 달랐다.
위안부 피해자 당사자들은 일본의 사죄와 배상에 대하여 마음속 응어리를 풀고 눈물을 쏟았다.
고맙다는 말까지 하였다. 사죄하고자 하는 일본측도 마찬가지로 진심을 다해 사죄했다.
'여성을 위한 아시아 국민 기금'은 일본 정부가 출자한 '국비'와 일본국민의 '민간모금'을 더한 기금이었다.
기부자들은 재단에 편지들을 보내어 자신들의 메세지를 전했다.
요약
1. 일본은 97년에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 이라는 외무성 산하 재단법인을 만들었다.
2. 이 재단을 통하여 한국, 대만, 필리핀, 네덜란드 피해자에게 사죄금과 일본국 총리 명의의 사죄편지를 전달하였다.
3. 한국에서는 재단 공식 보고에 따르면 11명, 주간경향 보도에 의하면 33명이 이 기금을 수령했다고 한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112061801261&code=115
4. 한국의 일부 언론과 단체에서는 기금을 수령한 할머니들을 공개적으로 매도했다.
5. '면피용 기금'이라는 언론 주장과는 상반되지만, 기금을 수령한 할머니들은
일본의 사과와 배상금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6. 일본은 2015년 '위안부 합의'를 통해 2번째 사죄와 배상을 하였다.
7. 박유하 교수는 아시아 국민 기금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와 위안부 관련 민간단체에 대한 비판을 담은 책, 제국의 위안부를 발표한다.
8. 위안부 관련 특정단체와 일부 위안부피해자들은 자신들의 명예가 훼손당했다고 주장하며 박교수를 고소했다.
9. 민사는 배상판결, 형사는 1심 무죄, 2심 벌금 판결이 내려졌으나 박교수는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른바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이라는 재단을 설립하여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실행하였다. 1997년도의 일이었다.
한국에서 실행된 배상 규모와 내용
일본의 사과금과 총리사죄편지는, 민간단체의 반대와 언론의 선동에 의해서 단 11명에게만 전달되었다.
후에 개돼중 정권이 민간단체의 모금과 국고보조금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하였으나
일본측 '기금'을 받아들인 11명은 제외되었다.
일본은 '기금'을 받은 피해자들도 한국정부의 지원금을 받게 해달라고 건의 하였으나,
개돼중 정권은 지급거부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기금을 수령한 할머니들을 향해 비난까지 가해졌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112061801261&code=115
언론과 민간단체 일각에서는 '기금'이 '법적책임'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청구권'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이 상호포기된 상태에서
국회 입법을 통한 배상은 조약에 위배되는 행위였다.
입법 배상을 위해서는 한일기본조약을 파기해야만했는데, 한국도 일본도 어느 쪽도
조약 파기를 원하는 쪽은 없었다.
역설적으로 '아시아국민기금'은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본조약'에 의해
'입법배상'이 봉쇄된 상태에서 일본측이 어떻게든 '책임'을 지기 위해 만든 재단법인이었던 것이다.
언론과 일부 단체에서는 기금의 성격과 내용에 대해 반일감정적인 비난을 일삼지만
당사자의 반응은 달랐다.
위안부 피해자 당사자들은 일본의 사죄와 배상에 대하여 마음속 응어리를 풀고 눈물을 쏟았다.
고맙다는 말까지 하였다. 사죄하고자 하는 일본측도 마찬가지로 진심을 다해 사죄했다.
'여성을 위한 아시아 국민 기금'은 일본 정부가 출자한 '국비'와 일본국민의 '민간모금'을 더한 기금이었다.
기부자들은 재단에 편지들을 보내어 자신들의 메세지를 전했다.
인간으로서의 사죄
-논의가 있어도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조금이나마 협력합니다.![]() -위안부였기 때문에 불행한 삶을 보내신 분들에게 부디 정중한 사과와 함께, 앞으로의 행복을 빌어 드리고 싶습니다. 충분한 도움은 못 드리지만 하루 2시간 정도 집에서 할 수 있는 자원봉사가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조속한 보상을 마음으로부터 기원합니다. -이러한 아시아여성기금이 생기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인으로서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기쁜 일입니다.
조금씩이라도. 할 수 있는 일부터
-전쟁 당시, 저는 어린아이였습니다만, 나중에 '종군위안부'의 존재를 알고, 희생이 되신 여성들의 억울함을 헤아리면서, 이러한 무모한 시책을 실행한 일본군대에 대한 분노로 몸이 떨려왔습니다. 이 죄의 보상은,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구체적 행동의 일환으로 이 기금의 의의를 인정합니다.-상대국의 입장, 일본정부의 이유도 있겠지만, ODA(정부개발원조)보다도 우선적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안부였던 분들의 명예회복에 도움이 되는 형태로 활용해 주었으면 합니다. 동시에, 이것으로 일본정부 책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규명 등, 각종 노력을 계속해 나가도록 요청해 주십시오.
전쟁을 모르는 젊은이로부터
-이 나라의 국민인 이상, 이 나라의 과거의 잘못, 역사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종군위안부로서 희생되신 여러분께 일본인으로서, 인간으로서 마음으로부터 사죄 드립니다. 아시아여성기금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그 전쟁을 모르는 27세의 젊은이로부터.- '민중의 전쟁책임'을 자각하며 참여합니다.
제대로 된 과거 청산을
-'종군위안부'로서 강요 당했던 여러분들에게, 저는 깊이 머리 숙여 사죄 드립니다. 이 분들에 대한 보상은 '국가'가 '국가'로서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노령이 되신 분들에게 남겨진 시간은 적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는 원칙론을 거두어 들이겠습니다. 일본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보상을 위해 사용해 주시길 바라며 송금합니다. 이 분들에 대한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이러한 역사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절실하게 생각합니다.
군인연금 일부를 기부
-과거 병사였던 사람으로, 군인 연금의 일부를 기부합니다. 그러나 한마디 말씀 드리자면, 전쟁터의 심리는 현장에 있던 사람밖에 이해할 수 없는 것. 가볍게 보지 말아 주십시오.
전후50년, 새로운 출발점에
-국가의 사죄와 보상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를 향한 과정으로의 민간기금에 찬성합니다. 얼마 안되지만 가족 4명의 모금입니다. 활용해 주십시오. 제 아버지는 지금 77세로, 만주(満州), 오키나와(沖縄)에서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기금의 성공을 기원합니다.-아시아 각국과의 좋은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아주 조금이지만 협력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참혹한 일을 당한 여성은 오늘날도 많이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전쟁책임의 처리뿐만 아니라, 지금도 어떤 무책임한 일본인 남성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는, 아버지가 없는 아시아 국가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구원의 손길을 부탁 드립니다. |
2007년 기금 홈페이지로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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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 일본은 97년에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 이라는 외무성 산하 재단법인을 만들었다.
2. 이 재단을 통하여 한국, 대만, 필리핀, 네덜란드 피해자에게 사죄금과 일본국 총리 명의의 사죄편지를 전달하였다.
3. 한국에서는 재단 공식 보고에 따르면 11명, 주간경향 보도에 의하면 33명이 이 기금을 수령했다고 한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112061801261&code=115
4. 한국의 일부 언론과 단체에서는 기금을 수령한 할머니들을 공개적으로 매도했다.
5. '면피용 기금'이라는 언론 주장과는 상반되지만, 기금을 수령한 할머니들은
일본의 사과와 배상금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6. 일본은 2015년 '위안부 합의'를 통해 2번째 사죄와 배상을 하였다.
7. 박유하 교수는 아시아 국민 기금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와 위안부 관련 민간단체에 대한 비판을 담은 책, 제국의 위안부를 발표한다.
8. 위안부 관련 특정단체와 일부 위안부피해자들은 자신들의 명예가 훼손당했다고 주장하며 박교수를 고소했다.
9. 민사는 배상판결, 형사는 1심 무죄, 2심 벌금 판결이 내려졌으나 박교수는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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